한밥상 게스트 하우스
애주가들의 마음을 잘 아는 동네술집, 네스토 본문
동네에 아무때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술집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 술집이 내 취향에 잘 맞으면 더 좋은거죠.
게다가 음식까지 맛있으면? 더 바랄 것 없이 최고입니다.
녹번동에 자리잡은 네스토가 바로 그런 집이 아닐까 해요. 녹번동 주민들이 아주 '초큼' 부러웠습니다. '둥지'라는 의미를 담은 네스토가 지향하는 곳 또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편안한 술집이예요.
왠지 일본 영화 속 한장면인 듯 보이는 네스토 실내 풍경.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프로그래머로 일하시던 사장님은 원래 요리에 취미가 좀 있으셨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요리가 이제는 본업이 되셨대요. 취미로 하던 요리가 일로 바뀌니 힘들지 않으셨을까 생각했는데, 사장님 얼굴 표정을 보니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양한 사케 메뉴들과 사케병을 지키는 케로로 중사
저는 실력이 좋은 사람은 그리 부럽지 않은데,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은 굉장히 부러워요. 네스토 사장님께서는 네스토를 연 4년 전부터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장을 보러 가신다고 합니다. 요리사들은 다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이예요. 요즘에는 워낙 물류가 좋아서 많은 식당들이 식자재를 배달시키는 편입니다. 네스토 사장님은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음식을 선보이려면 싸면서도 품질 좋은 식재료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아니 그 말을 하시면서도 왜 그렇게 즐거워 보이시는 걸까요? 일단은 4년 동안 매일 장을 보러 다니셨다는 말에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어요.
대화는 유쾌하게, 음식은 진지하게 만드시는 훈남 사장님~
매일 같이 장을 보러가신다는 말에 존경심이 뿜뿜.
네스토를 좋아하는 단골 중에는 혼술족도 제법 되는데, 그 비결이 궁금했어요.
"저도 술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일 마치고 어디 가서 한 잔 하려고 치면, 갈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해요. 또 혼자 와서 안주로 먹기에는 메뉴의 양이 많잖아요? 반값 반메뉴도 그래서 나왔죠. 미니 사시미를 제외한 모든 메뉴를 가격의 반값을 받고 반만 드리는 거예요. 사실은 반보다는 좀 더 드리지만요."
그렇습니다. 혼술족을 위한 이 신박하고 합리적인 해답은 다~ 술 좀 마셔본 사장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
사장님의 경험은 신메뉴의 개발과도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렇게 추가된 대표적인 메뉴가 바로 '어향가지'인데요. 수요미식회에 나온 음식점에 어향가지를 먹으러 갔는데, 사장님이 영업 끝나고 가시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항상 그걸 포장해서 가지고 나오셔야 했대요. 그런데 집에 가져와서 맛있게 먹을라치면 눅눅해져서 '안 되겠다. 내가 만들어야지!' 하고 만든 메뉴가 '어향 가지'랍니다. (셰프가 부러운 대목입니다. 원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다는 것.)
제 마음의 인기메뉴 어향가지. 튀김옷의 바삭바삭함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사진으로는 다 전할 수가 없네요. @_@
다만 기존에 있는 메뉴를 개발할 때도, 사장님만의 고민과 개성을 담기위해 노력하신다고 해요.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건 왠지 좀 창피해요."
저는 이 말에서 요리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데헷.
사실 어향가지는 중국 사천지방의 매콤한 어향 소스를 부은 가지요리인데요. 네스토의 어향가지는 사장님의 재해석으로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었지만 속은 부드럽고 촉촉한 가지 튀김에 어향 소스가 올려져 나와요. 가지 튀김만 있지 않고 덤(?)으로 닭가슴살 튀김도 함께 섞여있답니다. 차를 가져온 탓에 술을 못마시는 걸 아시는 사장장님께서 센스있게 논알콜 하이볼을 만들어주셔서 너무 맛있게 어향가지를 즐길 수 있었어요.
뜨거워 호호 불면서도 계속 입에 넣게 되는 어향가지와
센스 만점 사장님이 주신 논알콜 하이볼~
또, 항정살 간장 조림 메뉴도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돼지고기 뒷다리살 조림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보시고 개발한 메뉴라고 합니다. 창피한 것을 싫어하시는 사장님은 고민하다 소시지처럼 쫄깃한 식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항정살을 이용해 간장조림을 만들었고 메뉴로 추가하게 되셨대요.
선반에 올려진 작은 도쿠리와 잔들이 너무 예뻤어요. 갖고 싶어라~
이런 네스토에도 조금은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조금 일찍 문을 닫는 대신, 점심 식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시네요. 갓 돌이 된 딸내미와 시간을 더 보내시기 위해서라고 짐작해봅니다. 우리가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사장님의 워라밸도 소중하니까요.
한편으로는 네스토의 점심 메뉴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다음 번엔 점심 반주와 함께 네스토의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