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밥상 게스트 하우스
덕수궁 카페 <위트러스트 커피>의 섬세한 향을 내 책상 위로 가져오다 본문
커피를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커피는 일종의 '작업 연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 카페에 가면 머그잔에 'creative fuel'이라고 쓰여있죠. 창조의 연료로 쓰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곳의 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어릴 적, 엄마가 마시던 달달한 다방커피 딱 한 입으로 커피에 입문(?)한 이후 중고교 시절엔 네*카페 캔커피로, 대학생일 땐 한국에 막 진출한 별다방의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들로 차곡차곡 카페인을 충전해오고 있었네요. 다른 원고에도 쓴 적이 있지만, 문장노동자인 제게 커피는 '노동'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들기는 마감의 현장에서 커다란 머그컵에 찰랑찰랑 채워진, 지옥처럼 시커먼 커피를 떼어놓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커피의 섬세한 향 같은 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시청역 <위트러스트 커피>의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문득, 그간 커피를 습관처럼 혹은 작업보조로만 생각해왔을 뿐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마신 커피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위트러스트 커피의 질문.
<위트러스트 커피>는 다양한 산지의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하는 브랜드이자 이를 소개하는 카페입니다. 저와 동생님이 다녀온 <위트러스트> 카페는 시청역 한화빌딩에 자리잡고 있었어요. 깔끔하지만 다소 차가운 로비의 첫 인상을 스페셜티 커피의 향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랄까요.
명화가 그려진 스페셜티 커피와 시그니처 메뉴인 비앙카.
에티오피아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르완다 등 유명한 커피 산지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진 스페셜티 커피들을 소개하는 <위트러스트 커피>에서는 매일 그날의 날씨나 습도, 온도에 따라서 다른 커피들을 선보입니다. 제가 제일 맘에 드는 점도 그거였어요. 큰 고민 없이 전문 바리스타가 고른 다양한 커피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커피로라도 늘 마시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클림트의 키스가 프린트된 커피잔에 담긴 스페셜티 커피는 아주 가뿐하면서도 강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카드(?)도 함께 주시는데, 오늘 내가 마신 커피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노트에 적힌 향을 느껴보려 애쓰다보니 이전에는 포착하지 못했던 커피의 여러 가지 향기와 매력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커피를 옆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아서일까요, 왠지 커피를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여유를 집에서, 내 책상 위에서 즐기고 싶어 드립커피 팩을 하나 사 가지고 왔습니다.
한 팩에 다섯 종류의 커피가 들어있어요. 매번 바뀌는 것인지는 여쭤보지 못했는데, 마셔보고 마음에 드는 커피는 원두를 주문해볼 생각입니다.
브라질 베리 초코, 인도네시아 토라야 G1, 엘 살바도르 레드 허니,
에티오피아 코케 허니, 르완다 기사가라로 구성된 <위트러스트 커피>의 드립백
브라질의 베리 초코는 정말로 너무나 선명하게 초콜릿 향과 라즈베리 같은 향이 나서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었어요. <위트러스트 커피> 시청점 대표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에티오피아 코케 허니는 '약간 발효된 풍미, 흙냄새와 유사한 향기, 과일과 꽃향기가 뒤엉킨 강렬한 아로마, 독특한 와인같은 풍미로 전세계 커피 애호가들을 매료시킨다'는 내용이 카드에 적혀있었어요. 정말 산뜻한 느낌이 드는 커피였습니다.
거품이 나면서 잘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커피빵'이 잘 만들어지면 신선한 원두라고 하던데,
맞는 말인지 다음에 가면 사장님께 여쭤봐야겠어요.
나머지 커피는 그 맛과 향을 음미해볼 새도 없이 정신없는 사이에 헤비 드링커인 우리 가족들이 모두 마셔버렸네요. T-T 그래서 아마도 조만간 또 <위트러스트 커피>를 찾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커피를 만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