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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다반사

기쁜 폴의 머랭공장 과 젠장할 파스타...

부엉 집사 2013. 8. 17. 00:15

 

오늘은 이태원에 약속이 있어, 하루종일 이태원을 나돌아다녔습니다.

요즈음엔 홍대나 이태원 같은 번화가(?)에 가더라도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놀다 오기 때문에,

해밀턴 호텔 앞에서의 약속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어요.

 

역시나 바삐 바뀌는 한국 답게, 해밀턴 호텔 부근도 많이 바뀌었더군요.

촌닭처럼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 했어요.

 

오랜만에 갔으니 브런치집인 <프라잉 팬>에 들러야겠지요-

라기보단, "배고프니까 맛있는 것 먹어요!"라는 나의 말에 지인이 정한 곳입니다.

여러 프라잉 팬 중 프라잉 팬 블루네요. 몰랐어요. 오늘 알았음.

 

 

 

잠을 잘 못자서 속이 안 좋은데, 택시 아저씨가 정말 쏜살같이 달려주셔서 왠지 속이 울렁꿀렁.

저는 아보카도 연어 샐러드와 허니 자몽 스퀴시를 시켰습니다.

메뉴판 보면서 고를 때는 스퀴시가 뭐지, 프라푸치노인가- 했는데

결과로만 보면 짠과일 주스 정도 되겠네요.

슬슬 음식 들어가니 속이 진정되어, 지인의 접시도 조금 넘봐주었습니다.

 

 

 

식후에 자리를 옮겨 도착한 테이크아웃 그로잉.

근처에 공사장이 여럿인데다, 온 지가 오랜만이라 없어졌나 했는데

다행이 있어주어 고마왔어요.

 

 

 

테이크아웃 드로잉하면 바로 요 메뉴, <폴의 머랭공장>이 떠오릅니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삐죽삐죽 아티스틱하게 구운 머랭을 올린 커피인데,

양이 적고 달달한 머랭이 곁들여져 배부르지 않게 마실 수 있는 메뉴지요.

 

이 집 메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서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해봐야지- 하고 들어가지만

결국 고르고 마는 것은 언제나 폴의 머랭공장입니다. 이름도 귀엽잖아요. 흐흐-

 

다음 번에는 빙산 마끼아또를 마셔볼 거예요, 꼭.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드로잉을 주제로 작품을 소개하면서 현대미술작가들이 제안하는 드로잉을 지지하고,

드로잉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갑니다.

레지던시 작가들의 주제를 메뉴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라고, 메뉴판과 뉴스레터를 겸한 신문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렇게 전시도 하고, 화장실엔 무려 작가의 낙서가!!

 

 

 

테이크아웃드로잉 아니야? 라고 눈썹을 치켜뜨는

평소의 오탈자 지적병이 도졌지만,

으하하하-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인쇄되어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지인과 헤어지고 나서 이태원 거리를 무작정 헤메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새우와 브로콜리와 베이컨이 들어간

아주아주 진하고 부드러운 크림 파스타가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데요.

하아- 나도 참.

 

그래서 새로운 파스타집을 찾아나섰습니다.

어디가 맛있을까,

그런데 새우, 브로콜리, 베이컨이 다 들어간 크림 파스타라니, 아무곳에서도 팔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뜨거운 태양볕의 사막 아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서

신기루를 보는 사람처럼 계속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골목길에 이런 곳이 있어서, 원래 마카로니 마켓을 목표로 걷기는 했지만

오늘은 왠지 새로운 곳을 개척해야지- 하는 기분으로 들어가봤습니다만-

2층 카페에선 파스타는 커녕, 밥될만 한 메뉴가 없어서 오늘은 포기.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하지요.

더운 오후에 이태원 골목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여기는 왠지 맛이 없을 것 같애, 너무 새침한 느낌이라 싫어, 오늘은 꼭 풍성하고 크리미한 파스타를 먹고싶어-

라는 생각들 때문에 수 많은 파스타집을 거쳐서

결국은 맨 처음에 들어갔던 프라잉팬의 옆의 뒷집- 정도 되려나 한 곳에서

허겁지겁 파스타를 주문했습니다.

 

새우 파스타와 새우 브로콜리 파스타가 있길래,

베이컨은 없지만 새우 브로콜리 정도의 조합이라면 괜찮아-하고 냅다 시켰으나

허거덩!!!

 

나온 것은 이놈의 오일 파스타.

 

물론 내가 잘못 시킨 것이긴 하지만 왠지 기분이 찝찌름해졌습니다.

혼자 들어간 파스타집, 잘못 시킨 파스타, 나는 저녁시간 오픈 손님- 등등의 상황이 믹스.

 

포크를 들고 초록 야채를 머리에 어여쁘게 얹은 파스타를 헤쳐놓습니다.

웁스, 사진 찍어야지.

오늘의 이 억울함, 잊지 않겠다. 흑흑-

 

 

집에 가는 길에 생크림과 베이컨과 새우와 브로콜리를 사들고 갈 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파스타를 둘둘 말아 한입 가득 넣었습니다.

그리고 '크림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마음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서 열심히 먹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비주얼로만 보면 100% 그렇게 보이긴 했을거예요.

 

사이드로 나온 빵은 쫄깃함이 부족했고

파스타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크림파스타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나 혼자 여러모로 꼬투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늘을 왜 편으로 넣지 않고 잘게 다져서 넣었지?

새우는 왜 살을 바르지 않아서 손을 쓰게 만드는거야?

스파게티 양이 너무 많다-

양파의 달달함 때문에 왠지 어린아이 입맛의 파스타야- 등등.

 

 

애초에는 파스타 먹고 느긋하게 앉아 이런저런 일들을 하려 했으나

이미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파스타를 먹고 분연히 일어나 가게를 나왔습니다.

 

걷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데요.

오늘 내가 겪은 상황이 삶과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해보면 삶의 많은 국면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린 결정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아들고서 내가 허겁지겁 행동한 때문이니

먹기 싫은 파스타를 씹어넘기듯 꾹꾹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기쁘고 기껍지는 않고,

게다가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삶의 장면 말입니다.

 

한편, 그런 생각도 했어요.

기분에 따라서 맛있었다가 혹은 맛없었다가 하는 파스타집 말고,

아무때나 가도, 어떤 기분에 가도 항상 맛있게 먹고 올 수 있는 파스타집이 있으면

알고 싶다는 생각. 진심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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